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걸프 전쟁 (문단 편집) === 이후의 쿠웨이트 === 그들은 나라를 되찾았고, 다국적군에 참가한 나라에 감사를 표했다. 전쟁 초기에 왕궁을 수비하다가 전사한 왕제는 [[쿠웨이트]] 올림픽 위원장이자 [[국제올림픽위원회|IOC]] 위원이었는데, 전쟁 발발 얼마 후 중동국가들의 요구에 따라서 [[이라크]]의 [[아시안 게임]] 회원자격 박탈과 동시에 왕제의 아들에게 부친의 자리를 계승시켰다. 이라크는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후인 [[2006 도하 아시안 게임]]이 되어서야 참가가 가능해졌다.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 쿠웨이트 내에서는 전쟁 전 쿠웨이트의 국정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전쟁 중에는 국내에 잔류한 인사들에게 암살자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. 물론 이는 카더라일 뿐이지만.. '국정에 대해 비판적이고', '적국 군대가 국토를 거의 장악했는데도 국내에 잔류했다.' 이 말을 곰곰히 잘 따져보면 '친 이라크 성향'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. 쿠웨이트 정부 입장에서는 나라까지 뺏길 뻔했으니 제거할 생각할 만도 하다. 그리고 미국이 [[9.11 테러]] 이후 이라크를 침공하자 그때까지 이라크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었던 쿠웨이트[* 이들은 비록 국토는 완전히 되찾았지만 그렇다고 침공당한 원한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. 겨우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고. 거기에다 왕족이 전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거나 학살되었으니...]는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쪽에 섰고, 미군의 육군 병력 전개를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하였다.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 쿠웨이트가 사우디와 대립하고 있는 [[카타르]]의 편을 드는 근본 요인 중 하나가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에게 모국이 점령, [[병합]]당한 트라우마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다. 사실상 걸프 전 당시 이라크에게 점령당한 쿠웨이트나 현재 진행형으로 사우디에게 외교 보복을 당하고 있는 카타르 모두 성격은 다르지만 이웃 영토 대국들에게 핍박 받는 소국의 처지라는 점에서는 다르지만은 않았던지라,[* 본래 쿠웨이트는 카타르 단교 사태 초반기에 사우디와 카타르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려 했으나 중재국으로 나선 협상이 카타르와 사우디간 입장 차이로 실패하면서 카타르를 지원했다.] 그러나 쿠웨이트의 앙숙이었던 이라크도 이 사태 당시 쿠웨이트와 같이 사우디의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던 카타르를 지지했는데, 이는 오늘날의 국제정세가 영원한 동맹국도, 영원한 적국도 없이 이합집산의 원리로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